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앙코르 와트 (문단 편집) === 건축 === ||[[파일:Angkor_Wat,_calzada.jpg|height=300]]||[[파일:Angkor-Wat-Western-Gopura-inside-looking-west-03.jpg|height=300]]|| ||사원으로 들어가는 석조 다리. ||다리를 지나면 마주하는 서쪽의 중앙 고푸람. || 앙코르와트는 전체적으로 [[해자]]와 외벽, 그리고 사원 본체로 구성된다. 앙코르와트를 둘러싼 해자는 폭이 무려 190 m, 둘레는 5 km에 이르고 깊이는 대략 4 m 정도로 꽤나 깊다. 해자는 원래 사원으로 상징되는 탈속적인 공간과 세속적인 현세를 구분한다는 의미로 지어졌는데, 의도한 바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앙코르 와트의 기반을 단단하게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사원 아래의 지하수 수면이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조절해 사원 기단이 물러지지 않도록 만들었던 것. 뿐만 아니라 몇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주변의 열대우림이 사원을 완전히 집어삼키지 않도록 1차적으로 차단해주기도 했다. 해자를 건너 앙코르와트로 들어가는 다리는 해자 서쪽에 있다.[* 서쪽은 힌두교에서 [[비슈누]]를 상징하는 방향이다.] 석판으로 포장된 다리에는 석조 사자상이 양 옆을 지키고 있다. 원래는 이 다리 앞에도 건물과 문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졌다고 추정된다. 동쪽에도 들어가는 다리가 있지만 사실상 흙길이 깔린 제방에 더 가깝다. 다리를 따라 해자를 건너가면 고푸람[* 힌두교 사원의 독특한 탑문 양식.]이 나온다. 해자에서 약 30 m 정도 떨어진 곳에 앙코르와트의 외벽과 고푸람이 있는데, 정문이 있었던 서쪽의 고푸람이 가장 거대하다. 서쪽에는 윗부분이 살짝 무너진 고푸람이 총 3개 있는데 개중에 중앙에 있는 고푸람이 가장 크다. 중앙 고푸람 내부에는 팔이 여러개 달린 [[비슈누]] 석상이 있다. 앙코르와트가 힌두 사원이던 시절에는 아마 중앙 탑에 안치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신상이다. 앙코르와트 외벽은 그 길이가 무려 가로 1024 m, 세로 802 m에 달하며 높이는 약 4.5 m 정도로 꽤 높다랗다. 외벽은 [[회랑]]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바깥쪽 부분에는 사각기둥들이 열을 지어 서있고 안쪽 부분은 벽으로 막혀있다. 기둥들 사이의 천장은 [[연꽃]]으로 아름답게 장식이 되어있으며 벽면에는 웃는 압사라[* 힌두교와 불교의 여신들이자 천상의 무희. 물을 관장하며 굉장히 아름다운 존재들이라고 한다.]의 모습이 조각되었다. 특히 이 서쪽 고푸람에는 앙코르와트에서 유일하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고 유명한 압사라 부조가 있다. 어쨌든 외벽은 총 82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면적을 둘러싸는데, 원래는 이 외벽 안에 빽빽하게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이야 목조로 만든 궁전과 건물들이 죄다 썩어서 돌로 만든 가장 중앙의 사원만 남았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외벽 안에 발 디딜 틈도 없이 건축물들이 들어섰다고 생각하면 된다. ||[[파일:toexploreangkorwat.webp|height=300]]||[[파일:angkorwatmystery.jpg|height=300]]|| ||고푸람을 통과하면 나오는 석조 보도, ||석조 보도와 양 옆의 도서관의 모습. || 서쪽의 고푸람을 통과하면[* 고푸람의 크기가 [[코끼리]]가 통과해도 될 정도로 크다고 해서 '코끼리 문'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석조 보도를 따라서 쭉 중앙 사원으로 향하면 된다. 이 보도의 길이는 무려 350 m에 달하고 옆에 [[나가]]의 모습을 조각한 난간들이 조각난 채로 세워져 있다. 보도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양 옆에는 '도서관'이 한 채씩 있다. 동서남북을 맞추어 문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앙코르 와트의 전성기 때는 도서관이 아니라 제사용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서관 뒷편에는 인공 연못이 한 개씩 팠는데, 가로 50 m, 세로 65 m로 꽤나 널찍하며 왼편 연못은 물이 차있으나 오른편 연못은 상대적으로 말라있다. 당시에는 사원에 들어가기 전 이 곳에서 몸을 씻거나 제사용기들을 닦곤 했다. 사원 바로 앞의 십자형 테라스는 '영광의 테라스'라고 부르는데 나가로 조각된 난간과 사자상들이 있다. 보도를 걷다보면 마침내 사원 본건물에 도착할 수 있다. 중앙 사원 본체는 크게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갈수록 높아지며 맨 마지막 3층에 중앙 탑이 위치하는 구조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층들이 왕, 브라흐마, 달, 비슈누에게 봉헌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 모든 층에는 사면의 정중앙에 고푸람들이 1개씩 세워져 있으며, 특히 2층과 3층에는 중앙뿐만 아니라 모서리 부분에도 고푸람이 1개씩 세워져 있다. 사원이 서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세워졌기에 사원의 건축물들은 상대적으로 동쪽으로 치우친 구조다. 또한 왕이 들어올 때 가장 잘 보이는 부분이 정문과 가까운 서쪽 부분이었던 터라 서쪽 부분에 가장 정교하고 자세한 부조들이 가득 조각되어 있다. 또한 왕이 주로 사용했던 서쪽의 계단들이 다른 방향의 계단보다 상대적으로 경사가 낮게 만들어진 것도 특징이다. 사람들이 앙코르와트의 겉모습만 보고 채석장에서 채굴한 돌로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겉부분만 회색 [[사암]]을 사용해 만들었고 그 안은 적갈색의 [[라테라이트]] 벽돌로 채워넣은 구조이다. 라테라이트는 산화철을 함유하고 있는 적갈색 토양으로 땅 속에서는 부드럽지만 땅 밖에서는 철분 때문에 습기가 말라 굳으면서 굉장히 단단해진다. 가공하기는 쉽고 건물을 지은 나중에는 단단해지는 특성 때문에 아열대 지방에서는 라테라이트를 이용한 경우가 많았고, 앙코르와트 역시 라테라이트를 이용해서 지었다. 앙코르와트 유적을 잘 보면 일단 라테라이트 벽돌을 쌓은 다음 겉에는 사암 덩어리를 깎아서 덮었다. 물론 라테라이트를 쌓지 않고 통째로 사암으로 만든 부분도 일부 존재한다. 1층 회랑은 가로 215 m, 세로 187 m이다. 2층과 3층 회랑과는 달리 모서리 부분에 고푸람 대신 작은 파빌리온이 하나씩 있다. 회랑은 사원 외부로 뚫렸고 사각 기둥들이 회랑을 받친다. 1층을 2층과 연결하는 통로가 서쪽에 있는 십자 회랑인데, 이를 '1천 신령들의 홀(Hall of Thousand Gods)'라고 부른다. 순례자들이 이 곳에 불상이나 부조를 새겼으나 싸그리 약탈당해서 현재는 몇 개밖에 남지 않았다. 특히 1천 신령들의 홀에는 순례객들의 선행에 대한 글들이 유난히 많은데, 대부분은 [[크메르어]]지만 일부 [[버마어]]나 [[일본어]]도 있다. 십자 회랑 사이의 공간에는 한때 물이 차 있었다고 추측된다. 남북쪽의 회랑은 도서관이다. ||[[파일:angkor-wat-siem-reap-cambodia-a-inside-the-cruciform-cloister-called-preah-poan-hall-of-a-thousand-gods.jpg|height=300]]||[[파일:istockphoto-1305882407-170667a.jpg|height=300]]||[[파일:angkor-wat-sehenswuerdigkeiten-52-400x267.webp|height=300]]|| ||1천 신령들의 홀.[* 저 계단으로 내려가는 공간에 물이 가득 차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2층에서 올려다본 3층의 모습. ||3층의 중앙 성소. || 참고로 앙코르 와트에는 층과 층 사이마다 '중간단'이라는 독특한 구조가 있다. 주 목적은 1층과 2층을 완만한 경사로 연결시켜 사람들이 더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워낙 경사가 가파라서 자칫하면 제대로 오르지도 못할 수 있었기 때문. 중간단을 거쳐 1층에서 올라가면 2층 회랑이 나온다. 2층 회랑은 가로 115 m, 세로 100 m이며, 메루산([[수미산]])을 둘러싼 거대한 바다를 상징한다. 2층 회랑에는 압사라들이 대략 4명 정도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모습을 새겼다. 사면에 3단의 계단이 있어 3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이 2층과 3층 사이 계단들은 경사가 높기로 소문난 앙코르와트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매우 경사가 가파르다. 신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 3층 회랑은 2층에서부터의 높이가 약 40 m에 달할 정도로 그 경사가 극히 가파르게 올라간다.[* 워낙 경사가 가파르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커서 3층에는 한 번에 100명밖에 못 올라간다. 3층을 구경하는 데에는 딱히 시간제한이 없어서 만약 3층으로 올라가고 싶은데 사람이 꽉꽉 찼다면 누군가 내려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정사각형 모양의 단에는 모서리에 각각 2개씩, 중앙에 1개씩 총 12개 계단이 있는데, 각 계단에는 단이 약 40여 개 정도가 있고, 이 경사가 70도 정도로 매우 가파를 뿐만 아니라 폭도 보통 계단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이러한 계단을 오르는 사람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자세를 취하는데, 크메르인들이 사원을 지을 때 바로 이와 같은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참고로 크메르 제국 시기 앙코르와트의 3층은 오직 최고위 승려들과 국왕만 올라갈 수 있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평민들은 고작 해봐야 1층 회랑까지만 들렀다 가는 게 끝이었다.] 3층의 정사각형 모양 기단 둘레는 60 m이고, 모서리 쪽 계단이 올라오는 부분에 고푸람들이 1개씩, 그리고 정중앙에 가장 거대한 고푸람이 1개가 있어 총 5개 고푸람이 있다. 2열 기둥으로 장식된 지붕 덮인 회랑이 외벽 역할을 하는데, 이 회랑이 십자형 통로와 연결되어 자연스레 중앙의 성소로 향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맨 중앙에 있는 고푸람은 그 높이가 지면에서 65m나 되는데, 특히 크메르 특유의 그 솟구치는 듯한 장식 때문에 더더욱 그 높이가 높아 보인다. 본디 이 성소에는 비슈누 상이 있었으나 이후 불교가 전래되면서 비슈누가 쫓겨나고 그 자리에 불상이 놓였다. 허나 원래 있던 불상은 진작에 도굴당해 사라졌다. 그나마 1934년에 고고학자 조지 투르베가 중앙 성소 아래에서 모래와 물이 찬 비밀 구덩이를 발견했지만 이미 도굴된 상태였다고.[* 다만 이 곳에서 도굴꾼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황금 잎사귀 유물을 발굴하는 성과를 남겼다고 한다.] 현재는 이 중앙 성소 한가운데에 새로 불상을 안치해 놓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